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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투데이] 13년 만에 학생들 앞에선 이의 말은?
관리자17.11.20
한 가지라도 더 전해주고 싶은 노학자의 간절함이 느껴졌다.
16일 오후에 있은 강남주 전 부경대 총장 특강 말이다.
그는 ‘부경대 학생들 앞에서 하는 강연’은 2004년 정년퇴임 후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 또한 부경대 동문(수산경제학과 59학번)이다. 강연장인 학술정보관 2층 영상세미나실을 채운 까마득한 후배들 앞에 선 그의 말은 바쁘고 뜨거웠다.
대학인문역량강화사업단(단장 정해조)의 ‘인문학 콘서트’ 프로그램에 강사로 초대된 그의 강연 제목은 ‘조선통신사의 목숨을 건 항해’였다.
올해 78세인 강 전 총장은 사실 이즈음이 그의 삶에서 최고 전성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광속’ 보폭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내에서 그가 독보적으로 20년 넘게 파왔던 조선통신사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전무후무한 좋은 결실을 거두었고, 조선통신사 일원이었던 동래 화가 ‘변박’을 소재로 한 그의 장편소설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며 재판 인쇄에 들어간 즈음이다.
이처럼 ‘핫한 그’의 말은 무엇일까?
강 전 총장은 “무언가를 마음먹고 하면 인생이 달라지게 돼 있다.”고 후배들에게 강조했다.
강 전 총장은 이날 △고교 때 어떤 백일장에서 참가자와 심사위원으로 만난 향파 이주홍과의 인연으로 부산수산대에 입학하기로 결심한 사연, △졸업 후 전공을 국문학으로 바꿔 부산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밟은 사연, △영어실력을 밑천으로 부산문화방송 기자공채 시험에 도전, 합격해 언론인(사건기자)으로 뛰었던 사연을 숨 가쁘게 들려주었다.
특히 강 전 총장이 기자시절 어촌(임랑)에서 멸치잡이 노래를 채록한 취재 경험은 부산수산대 교수가 된 후 어촌민속연구로 이어졌다.
남들이 잘 안하는 ‘히든 필드’였던 그의 어촌 문화연구는 우리 연안을 한 바퀴 돌고 대마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대마도에서 ‘조선통신사’라는, 그의 삶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시작을 만났다.
그 때(1994년) 일본인이 들려준 조선통신사 이야기가 씨앗이 되어 그는 자신의 노년기의 많은 시간을 조선통신사 연구와 홍보에 썼다.
그는 조선통신사학회를 만들어 그동안 미미했던 연구를 체계화하고, 한국과 일본, 미국 맨해튼에서 행렬 재현 같은 축제 이벤트로 승화시켜 조선통신사를 부산의 대표 문화콘텐츠로 만들고, 급기야 세계 유산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다.
강 전 총장은 “서로를 이해하려면 서로의 역사를 잘 알아야한다.”면서, “조선통신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의 역사교과서 8종을 구해 읽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임진왜란 이후 한·일 두 나라는 불구대천의 관계가 됐다. 그러나 조선통신사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가교역할을 했다. 두 나라가 인접해 있으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전쟁이 없었다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한 한·일 두 나라는 형제처럼 사이좋게 살아야한다. 형제간은 싸워도 형제다. 조선통신사를 교훈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했다.
이날 국제신문은 ‘상호교린 조선통신사가 제 첫 장편소설도 낳았습니다.’를 제목으로 강 전총장의 인터뷰를 전면으로 소개했다.
때마침 조선통신사 유네스코 등재에 맞춰 출간된 강 전 총장의 장편소설 「유마도」에 대한 얘기였다.
▷ 강남주 전 총장 국제신문 인터뷰 기사 보기 “클릭”
그는 시집 9권, 평론집 3권, 수필집 2권을 낸 시인이자 수필가이자 문학평론가다. 그리고 또 소설가다. 3년 전에 계간문예지 「문예연구」 신인문학작품 공모전에 당선, 소설가로 등단했던 것.
강 전 총장은 이날 강연 모두에 “여러분의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보니 정말 자랑스럽다.”고 후배들을 한껏 띄웠다.
이 말은 이런 뜻일 것이다.
‘이렇게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후배들아, 너희도 마음먹고 한다면 인생은 달라진단다.’
아마 이런 그의 살가운 사랑을 후배들도 뻔히 눈치 채고 있었을 것이다.
▷ 강남주 전 총장 부경투데이 기사 보기 “클릭”